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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서 흔히 선배 무당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얘야 중심 잘 잡아라.
바로 이런 말씀을 옛선배 무당님들은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것을 어제 좀더 구체적으로 배울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심이라고 하면 대부분 자신의 신체 내부의 중심을 생각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무속은 보이지 않는 기(氣)를 다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을 신체 외부와 신체 내부와의 조화를 이야기를 하기에 이것은 신체 외부에 있습니다.
우리고 공부를 하는 것은 사고의 평형을 이루기 위함 입니다. 바로 사진의 저울처럼요.
무속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너무 보이지 않는 허령의 공간에 의미를 두면 그것이 바로 귀신의 놀음에 놀아나는 꼴이 됩니다.
그러다고 너무 원칙만 지켜서도 아무것도 되지가 않습니다. 무속에서 풀고 닦는다라는 의미또한 바로 이러한 평을 찾기 위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다들 가지고 태어난 것이 다 다르기에요.
이러한 것을 다 평형을 맞출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헌 평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내가 바로 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것은 결과로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기 이전에 그 과정에서 어떠한 것들이 움직 였는지를 파악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무당 역시 사람을 결과로서 점사를 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몸안에 있는 그 과정을 보고 점사를 내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을 가지고 "보여준다, 짚어준다, 비추어준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점사를 내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중심을 잘 잡고 점사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당은 허주치기와 부정치기가 무당의 모든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필자 또한 이러한 것을 파사현정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사용을 할 뿐입니다.
파사현정이란 삿된 견해를 깨트려 바른 견해를 들어나게 한다라는 말입니다.
바른 견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고와 나의 몸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서 그것을 수정을 하다보면 올바른 것을 알아서
나타는 것입니다. 답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에서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사구부정이라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부정을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신은 존재한를 부정하고, (A를 부정하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부정하며,(A가 아님을 부정하고)
신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를 부정하고,(A이면서 A가 아님을 부정하고)
신은 존재함녀서 존재하지 않는것는 아니다를 부정하는 것입니다.(A이면서 A가 아님을 아님을 부정하고)
바로 이러한 사고의 과정에서 어떠한 통찰이 온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면 무엇을 남을까요?
바로 이세 세상에 진실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 남게 됩니다.
그렇기에 비어있는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뒤집으면 이 세상은 모든 것은 제한적으로 진실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이 존재한다 존재 안한다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신이라는 매개체로 내가 어떻게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는 신이라는 매개체로 좀더 나은 삶을 살아갈 계기가 될 것이고, 누구는 신이라는 매개체에 홀려서 정신이 망가지는 삶을 살아갈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과연 신이 도움을 주는 존재일까요? 아닐까요? 그 답은 스스로의 믿음, 신념, 가치관등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것은 제한된 진실 이기도 하며 제한된 거짓이기도 한 것입니다.'무속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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