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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서나 일반론적으로 말하는 신(神)이라는 개념은 표현하는 양식에 따라서 달리지게 됩니다.
어디에서는 이러한 것을 물(物)자체라고 말을 하기도 하며 이러한 것을 카오스, 혼돈 그 자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이것은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무언가" 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저 너머의 무언가를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됩니다.
누구는 이러한 것을 신(神)이라고 할 것이고, 누구는 도(道)라고 할 것이고, 누구는 물(物)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무언가를 사람들이 지능이 생기면서 이러한 것을 패턴화, 구조화를 한 후 이것을 카테고리화를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이런 패턴은 우리가 "지우개"로 부르자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사람또한 물자체이며 이러한 사람의 구조와 패턴을 사람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은 것 밖에는 없습니다.
칸트는 이러한 물자체에 도덕과 양심이 있다고 주장을 하였고, 쇼펜하우어는 도덕과 양심은 없고 오직 혼돈의 카오스일 뿐이라 명했습니다. 동양사상도 물자체 도덕과 양심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이러한 것을 해석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이러한 도덕과 양심이 죽었다라는 것에 해당이 됩니다. 신은 물자체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무속에서 이야기하는 신(神)이라고 불리어지는 존재또한 물자체 입니다.
다만 이것이 인간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여기에 기(氣)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를 패턴화, 구주화를 시키면서 카테고리화를 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이러한 형태와 증상을 우리는 신(神)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자 입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결과를 나타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적부터 인간의 지식을 벗어나는 모든 행위와 형태를 신(神)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를 한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 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은 물(物)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인간이 도저히 분류를 할 수 없는 의식의 저 너머의 그 무엇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을 보는 사람의 모습도 다 제각각 입니다. 같은 기(氣)라도 사람마다 이러한 것을 구조화 하고 패턴화하는 것이 다 다르기에 신이라는 카테고리 범주에는 들어가지만 어떠한 사람은 동자로 느낄것이고 어떤 사람은 할머니로 느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로 느낄것이고 어떤 사람은 장군으로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식너머의 그 무엇을 신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덕일수도 양심일수도 있겠지만 무속에서는 이러한 행위자를 신이라고 불렀던 것이라 개인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도덕과 양심에 도달하면 즉 신에게 도달하면 다들 행복해 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없는 것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없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에 사람들은 삶에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론 적으로는 그냥 막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한 현실에서 살 수 있는 계율을 말씀하셨지 깨달음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것이겠지요.
제가 항상 이야기를 하는 것 중 하나가 "내 몸을 떠난 이야기는 다 개소리로 들어라" 입니다.
바로 이러한 없는 것을 찾을려고 하지말고 있는 것을 어떻게 나에게 맞게 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모색을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 또한, 태어난 자신의 그 모습을 늠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모습에서 어떻게 자신을 도구로 사용을 하며 이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모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운명은 존재를 하지만 그 운명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라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운명은 의식의 저 너머로서 부터 온것이고 의식 저너머의 그 무엇은 바로 혼돈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동양에서도 음양막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음과양은 추측이 불가능 하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즉 혼돈이기에 추측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의식 저 너머의 무엇인가가 시공안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구조화를 하고 패턴화를 시켜 카테고리화를 시킨것이 바로 사주,타로등의 각종 점술법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같은 사주로 태어나도 살아가는 양상은 다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태어난 운명도 운명이지만, 살아오면서 훈습으로 얻어진 구조화, 패턴화, 카테고리화 능력이 다 다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자신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색해야 합니다.
누구나 다 모자르게 태어납니다. 이러한 것을 열등인자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등인자로 인해서 열등감이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열등감과 열등인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 입니다.
누누이 습(習)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구조화, 패턴화가 이루어진 것을 풀고 다시 닦아야 한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무속에서의 신도 이러한 물자체로 접근을 해야하는 것인거지 이것을 패턴화, 구조화를 시켜버리면 답이 안나옵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필요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대부분에 사람들은 지금 이러한 신비현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어떻게 발붙이고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한 부분이기에 상담오시는 분들에게도 저 너머의 그 무엇을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무속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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