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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사람은 이러한 고통을 없애고 행복이라는 것을 갈망합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을 가장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인생은 원래고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사람은 자기 멋대로 할려고 합니다.
행복은 없고 고통이니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움직이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고통'이라는 것이랑 친해져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고통이 '왜' 나한테만 주는 시련인가에서더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할까를 모색하게 됩니다.
'왜'라는 단어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답이 나와도 결국 사람과 세상이 한없이 미워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부모원망도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원망을 하고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면 그때에만 조금 나아질 뿐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은 또다시 올라 옵니다.
나아주시고 키워주신것도 감사를 해야하는데 왜 낳았냐? 이럴거면 낳지 말지..등의 원망섞인 소리를 합니다. 물론 필자도 어릴적에는 이러한 부모원망을 했었고, 사회를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알려주신건, 세상은 그대로인데 너의 마음이 시궁창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이말을 듣고는 아무말도 하지를 못하였습니다. 맞는 말이니깐요.
같은 사람을 보아도 어떤사람은 '참 즐거워 보이네' 라는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참 꼴깝 떤다.'라고 말을 합니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다만 개개인들마다 그 행동을 보고 해석을 하는 견해다 다르니 둘다 맞는 말이겠지요.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사람은 음에 귀속이 되어 항상 우울해 하고 세상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신에 귀속이 되어 이러한 것을 세상을 향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색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고통'임을 받아들이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 모색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고통을 알기에 남의 고통에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깁니다.
이러한 것을 바로 세상에 기여를 하고 헌신을 하는 계기가 됩니다.
현재는 신(神)이 돈이고 도(道)가 돈인 세상입니다. 개인적으로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돈을 어떻게 하는지는 당사자들의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고 여깁니다.
아닌건 아니고 해줄수 있는 것은 해줄수 있다라는 명확한 자신의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신을 모시고 나아가는 삶에서도 바로 신을 디딤돌 삼아서 이러한 작은 용기는 내게 끔 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디딤돌이 되고 쌓이고 쌓여서 나의 삶에 발판이 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쌓이고 쌓여 나란 사람의 규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업이라는 것은 타고난 팔자도 있겠지만, 내가 살면서 쌓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태어나기전에 업은 내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경험한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원망을 할려면 전생에 나에게 원망을 하고 복수를 할려면 다음생에 나에게 복수를 하라고.
지금 전생에 나에게 원망을 하고 계시나요, 다음생에 나에게 복수를 할려고 살고 계시나요?'무속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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