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 초월적인 존재와 힘은 분명 존재를 합니다.
그것을 인간이 신(神)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만든 것이라 개인적으로 여깁니다.
그렇기에 현존하는 신(神)이라는 것은 인간이 다 만들어낸 존재라 여깁니다.
이세상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입니다.
신이라고 불리어 지는 존재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 여깁니다.
고대사회에서 시작하여 현대까지 시대와 문명과 문화가 바뀌면서 개념및 뉘앙스가
시대에 따라 변화를 하였듯이 신(神)이라고 불리어지는 모든 것들도 그 개념과 뉘앙스가 변화해 왔다고 여깁니다.
그렇기에 올바른 뜻풀이는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바른것이 무엇인지 도전을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신(神)이라고 불리어지는 존재는 누군가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만들어져 사용되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영검은 신이 주지만 재주는 제자가 부린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같은 재능을 주셔도 그 재능을 펼치는건 결국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일으켜 지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단어가 신이기도 한 것이라는 것도 하나의 측면으로 접근중입니다.
결국 단어도 그사람의 생각과 그사람이 바라보는 개념이기에 그렇습니다.
무당이 허주를 벗기고, 부정을 씻는것 또한 이러한 것에 속한다 여깁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보다 그 보이는 것을 어떻게 관(貫)하여 여길 것인지를 먼저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무속이 이렇게 천대를 받고 욕을 먹는 것도 너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것들만 찾다보니 욕을 먹는건 아닌가 하고 개인적으로
여깁니다. 신이 만능이 아닌데 마치 자기가 모시는 신이 만능인 것 처럼 이야기하고 대하니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무당 스스로의 자질과 됨됨이와 인간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보다 스스로 먼저 자신을 닦아야 한다 여깁니다.
그것이 수신(修身)입니다. 즉 자기몸을 닦는다라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먼저 통제하지 못하면 남을 통제 못합니다.
또한 우리가 신(神)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한 것도 바르게 바라볼 수 없다 여깁니다.
그래서 무당은 자신의 몸을 먼저 닦는 것이 먼저인 것인거고, 이러한 닦는 과정에서 무당 스스로의 명기와 서기가 예민에서
예리한 칼날로 바뀌어진다 여깁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누르고, 가리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심리를 구분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여깁니다. 그래야지만 심령이 열려서 제대로 신의 감응을 받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기에 먼저 현실에 발붙여서 열심히 생활하면서 스스로를 풀고 닦으면서 사는게 먼저라 여깁니다.
신이라고 불리어지는 존재도 결국 나란 사람을 통해서 들어나는 것인거지 다른것이 아니라 여기기에 그렇습니다.